뉴욕에서 며칠 전 함께 필라델피아 당일치기 여행 동행을 하셨던 분에게서 같이 점심 먹자며 연락이 왔다.

점심 때 저렴하게 코스 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가고 싶다 했는데.

문제는 너무 캐주얼한 그분의 옷차림 (실제로 그 분을 보니 정말 캐주얼한 치마에 운동화였음 - 뭔가 테니스웨어 느낌이 나는...)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의 대부분은 드레스코드가 까다롭다.

가끔 캐주얼한 옷차림이 문제되지 않는 레스토랑들이 있는데 주로 스테이크집이나, 약간 가족 단위로 많이 갈 것 같은 느낌의 레스토랑?

여튼 찾다 보니 그 분이 'Gotham Bar & Grill (고담 바 & 그릴)'이 드레스 코드가 캐주얼해도 괜찮은 것 같다며 가자고 했다.

나야 뭐 크게 상관없어서 그러자고 하고 혹시나 해서 드레스 코드를 찾아보니, 어디에도 캐주얼하다는 말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좀 덜 까다롭긴 했지만, 그래도 고급 레스토랑인데 너무 캐주얼한 옷차림은 좀 아닐 것 같다 싶었다.

그렇다고 여행 온 나라고 딱히 뭐 옷들이... 하나같이 캐주얼한 청바지나 티셔츠 쪼가리 -_-;;

그래도 가져온 옷들 중에서라도 최대한 덜 캐주얼해 보이게 입으려 애썼다.

심지어 나이 들어보이게 입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나이 들어보이는 거 당연히 싫지만...

(동안 소리 듣는 재미(?)로 살았는데 - 그래도 요즘은 내 스스로도 확실히 얼굴이 들어보인다는 느낌이 난다. ㅠㅠ)

마침 전날 Beacon's Closet에서 '덥다'는 이유로 샀던 반팔 흰남방에, 입국할 때 편하다고 입었던 네이비 색의 레이온 통바지,

그리고 그나마 가장 캐주얼한 느낌이 덜 났던, H&M에서 구입한 분홍색; 발레 슈즈.

남방 위에는 작은 스카프를 두르고, 옆으로 메고 다녔던 유르트 가죽 가방도 어깨끈을 떼고 클러치처럼 들고 갔다.

풀어헤치고 다녔던 머리도 묶었더니 옆머리가 빠지면서 더 들어 보여서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잘 안 하던 화장도 하고 (물론 진한 화장은 아니지만)...  이렇게 해 놓으니 잘 차려입은 것도, 딱히 뭐 세련되게 입은 것도 아니지만

그나마 내 옷 중에서는 최대한 덜 캐주얼하고 조금은 노숙해 보일 수도 있다고 여겨졌다. ^^;



동행분이 나보다 좀 더 늦게 와서, 레스토랑 앞에서 조금 기다리다가 먼저 들어갔는데...

들어가기 전에 유리에 비친 모습을 찍어봤다. 위에서 찍으니 짧고 통통해 보이는군.  (미국에서도 아주 작은 키는 아닌데.)

어쨌든 충분히 아줌마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줌마처럼 보이고 싶어하다니 그런 기분은 정말 처음이었다. ㅋㅋ

청바지에 운동화 신고 가면 어려보이면서 관광객으로 보이기에도 충분했을 테니.


실제로 레스토랑 내부는 고급스럽고 좋았다. 직원들 모두 친절했고...

가끔 뉴욕에서 어느 레스토랑에 가면 불친절(?)하다거나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을 당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글들도 보곤 했는데,

최소한 여기서는 그런 걸 느끼지 못했다.

내가 셔츠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갔어도 똑같이 대해 줬을 거라고 믿지만,

한편으로는 내 노숙한 차림 덕분에 내가 그렇게 어린 애로 보이지는 않았을 거고, 그래서 더 깍듯이 대해 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동행분이 도착했고, 우리는 미리 정해둔 Greenmarket Prix Fixe 메뉴를 시키기로 했다.

각 코스마다 3가지 다른 종류의 음식이 있어, 그 중 하나씩 골라서 주문하는 거였다.

사실 Greenmarket이란 건 맘에 들지 않았지만 - 아니 인당 $38짜리 코스 요리를 풀로 해결하라고?!

그나마 오리고기가 하나 메뉴에 있어서 $7을 더 내고 그걸 먹기로 했다.



코스 요리를 주문하고 나니 서버가 "음료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하고 묻는다.

낮부터 술을 마시기도 그렇고, 하지만 와인 한 잔 정도는 괜찮을 텐데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다 보니

막상 음료 메뉴를 봐도 뭘 골라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럴 땐 그냥 서버에게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게 좋다. ㅎㅎ

그분이 무알콜의 백차와 크랜베리, 생강 그런 향이 나는 TOST란 이름의 음료를 추천해 주셨는데,

(어차피 잘 모르므로) "그럼 그걸로 주세요" 하고 주문했다.

화이트와인이나 샴페인 같은 느낌이었지만 (사실 맛은 기억이 안 나는데 느낌은 좋았다) 취하지 않으니 그것도 좋고. ㅋㅋ

잔이 비어 갈 때마다 서버가 와서 계속 채워주셨다.


식전빵도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빵. 겉은 조금 질긴 듯 하고 속은 부드러운...

물론 나는 한국에서 발사믹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린 올리브유에 빵을 찍어먹을 일이 훨씬 많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버터를 발라먹는 빵도 고소하고 담백하니 좋았다.

솔직히 이런 걸 한 개 먹고 끝내야 한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마음 같아서는 좀 더 갖다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여긴 한국이 아니니까. 식전빵을 왕창 갖다 주고도 한두 개 정도 먹으면 나머지를 말도 없이 도로 가져가 버리는 나라니까. ㅠㅠ


2명이서 코스 요리를 서로 다른 두 가지를 시켜서 같이 나눠먹었다.

코스는 First - Second - Dessert였는데,  애피타이저 - 메인 요리 - 후식...이라 하기는 그렇고 그냥 애피타이저 1 - 애피타이저 2 - 후식의 느낌이 강했다.

우리가 주문한 건 왼쪽이 Market Vegetable Salad, 오른쪽이 Cured Atlantic Salmon이었다.  쉽게 말해 그냥 야채 샐러드랑 훈제 연어임.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건 Heirloom Tomato Gazpacho로, 일종의 야채 수프. 수프는 딱히 끌리지 않아서...


두번째로 주문한 코스 요리는 Campanelle Pasta와 Duck Breast.

두번째 메뉴는 사실 네 가지가 있었는데, 나머지 둘 중 하나는 샐러드라 첫번째와 겹쳐서 패스,

다른 하나는 branzino가 뭔지 몰라서 패스. 나중에 찾아보니 '농어'라는 생선이었다. 이거 시킬 걸 그랬나...

파스타는 기대한 맛이 아니었다. 맛이 없다는 게 아니라, 면이 밀가루로 된 그런 면이 아니라, 뭔가 야채를 채썬 것 같았다.

닭가슴살은 많이 먹어봤어도 오리가슴살은 처음인데, 사실 오리고기를 그렇게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물론 안 먹는 건 아니지만, 훈제 오리고기를 즐기던 때가 있었는데

예상치 못하게 자주 먹을 일이 생기자 언제부터인가 그 퍽퍽한 훈제오리가 조금씩 질리는 느낌도 있었다.

그래서 동행분이 이걸 시키자 했을 때 크게 기대 안 하고 주문했다.

(어차피 풀밖에 없는 것보다는 고기라도 한 점 있는 게 낫겠지 하며) $7나 더 내야 했는데...

먹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맛이다.

역시 고급 요리는 고기를 얼마나 부드럽게 익히냐에 달려있구나... (물론 곰탕처럼 푹 고으는 그런 요리 말고 ㅋㅋ)

생각해 보니 여기서 먹었던 음식들 중 제일 인상적인 요리가 아니었나 싶다.  $7를 더 받을 만하다고 느낄 만큼.


후식은 Gotham Chocolate Cake과 Vanilla Parfait. (물론 바닐라 파르페는 내가 시켰다. 난 바닐라 아이스크림 성애자~)

초콜릿 케익은 약간 단짠단짠한 맛이 있었다. 정말 미국은 단짠단짠한 거 좋아하는 거 같다.

(그러니까 salted caramel 이런 거 많이 만들어냈지... ;;)

후식도 맛있게 잘 먹었다.



레스토랑의 내부는 이런 분위기였다  우리 같은 관광객도 있고, 그냥 현지인들도 있는데, 대체적으로 현지인들은 나이가 좀 지긋하신 분들.

즉, 젊은 애들이 많이 올 만한 느낌은 아니다.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올 분위기.

나보다 더 캐주얼해 보이는 차림의 중년 어른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내 동행분만큼의 캐주얼 차림은 거의 보이지 않았음)

어쨌든 분위기는 좋았다. 서버들도 친절했고.  음식을 가져다 주고 빈 접시를 치워주는 서버들은 거의 히스패닉이었다.

하지만 음식과 음료 주문을 받고 음료를 계속 따라주고 계산서를 가져다 준 서버가 기억에 남는다.

그분이 우리 테이블 담당 서버였던 것 같은데, 키가 훤칠하게 크신 백발의 백인 할아버지였다.

정중하고 깍듯하면서, 근엄한 인상이었지만 살짝살짝 보이던 미소와 친절한 태도가 참 인상적이었다. 뭔가 영화배우 같았다.

나보다 3살 즈음인가 어렸던 그 동행분과 둘이서 '저분 진짜 멋있다', '영화배우 같다'며 계속 감탄을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 몰카(?)라도 한 장 찍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ㅋㅋ

엄마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사실 진담에 가깝지만;)

'뉴욕에 가면 어디 멋진 남자(=사윗감) 없나 눈 크게 뜨고 잘 찾아봐라' 하셨는데 (딱히 내가 그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어서;;),

실제로 이번에 내가 뉴욕에서 본 멋진 남자는 딱 두 명 뿐이었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이분! (다른 한 명은 지하철에서 근처에 서 있었던 젊은 흑인 남자)

내 나이 또래나 근방의 젊은 멋진 남자를 찾아봐야 하는데 어찌 이런 어르신이 멋있다니... ㅠㅠ

사실 뭘 먹으러 가면 서버들은 대부분이 젊은 사람이다. 주로 아시안이나 히스패닉이 많았던 걸로 기억된다.

흑인도 꽤 있고 백인도 종종 있지만, '신사', 'gentleman'이란 단어 그 자체인 듯한

이런 멋진 백인 할아버지 서버는 찾아보기가 힘들단 말이지...  뉴욕에 와서 멋진 노신사 서버한테 제대로 반해버렸다. ㅎㅎ


계산서에 나온 금액은 총 $103.43. TOST란 음료 한 병이 $12이었군. 우리는 팁까지 총 $125를 냈다.

정확히는 거스름돈을 따로 받을 필요없이 그냥 그만큼의 돈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서버 어르신과 눈인사를 하고 나왔다.

계산서대로라면 그 분의 이름은 Gary J. 게리 할아버지... 뒤에 J라고 붙어있는 걸 보니 성이 뭘까 더 궁금해졌다. ㅎㅎ

어쨌든 팁은 22% 정도 낸 셈이었고, 동행분과 각각 $62.5를 냈다.



인당 $60이 넘는 식사는 거의 해 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고 뉴욕에서도 마찬가지.

전에 친구와 Carmine's에서 2인용 드라이에이징 스테이크와 호박 튀김을 먹었을 때가 제일 비쌌던 것 같은데...

(그나마 그건 양이 많아서 많이 남겼고, 싸 와서 숙소에서 두 끼를 더 해결했다. ㅋㅋ)

그 이후로는 이번 식사가 제일 비쌌다. 양이 많은 건 아니고, 정말 뭔가 근사한 경험을 돈으로 샀다고나 할까...

물론 이 레스토랑 이름은 많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동행분이 아니었다면 굳이 오려고 하진 않았을 것 같다.

뉴욕 토박이인 절친 C에게 이 곳에 대해 얘기했더니, 그 친구도 이 곳에 대해 들어보긴 했지만 와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역시 여기도 이 동네 사는 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곳인가...



Gotham Bar & Grill NYC 

ADDRESS   12 East 12h St., New York, NY 10003 USA  (5th Ave.와 University Place 사이)

TEL  212-620-4020

WEB   gothambarandgrill.com

HOURS  월-목: 12:00-14:15 / 17:30-21:45

              금: 12:00-14:15 / 17:30-22:00

              토: 17:00-22:30

              일: 17:00-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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